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지만

4층사람들 11. 널위한문화예술 오대우 님

이선재 · 2018년 10월 16일

메디아티는 작년 가을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의 붉은 벽돌 건물로 이사를 왔다. 많은 이들이 '샘터 사옥'으로 기억하는 곳이며, 84년 개관한 샘터파랑새극장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메디아티가 이곳에 이사온 직후, 자신을 샘터의 오랜 독자라고 밝힌 할머니 한 분이 샘터가 이사간 사실을 모르고, 노란 은행잎을 들고 찾아오신 적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백 걸음도 채 안되는 곳에는 마로니에 공원이 있다. 계절마다 매력이 다르지만, 봄여름에는 특히 행사가 잦다. 그중 대학로가 단연 빛나는 때는 누가 뭐래도 '서울연극제'가 열리는 4,5월이다. 올해 열린 39회 서울연극제 개막행사에는 '연극은 대학로다'라는 슬로건이 함께 했다. 이 무렵 대학로는 기분 좋은 활기로 소란스럽다.

하지만 이런 활기와는 별개로, 한편에서는 "대학로는 죽었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당장 구글 검색창에 '대학로는 죽었다'는 문장을 검색해 보면 '연극은 끝났다' '대학로는 죽었다'로 시작되는 기사들이 줄줄이 보인다. 2015년에는 28년 전통의 소극장 '대학로극장'이 치솟는 임대료로 폐관 위기에 몰리자 200여명의 연극인이 상주를 자처하고 상여를 멘 채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는 일도 있었다. 대학로극장은 그해 4월 폐관했다.

혜화로 이사를 온 후, 메디아티의 팀원들끼리 '대학로를 다시 살릴 방법은 없을까?' 주제로 가끔씩 대화를 나눴다. 그러던 차에 한 영상을 보게 됐다. 예술집단 보름의 '대학로에서 벌어진 두 개의 사건'이라는 영상이었다. 누가 만든 건지는 모르지만 '잘 아시는 것 같은데, 만나서 좀더 얘기를 나눠보면 좋겠다'고 막연한 생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우연한 기회로 해당 영상을 제작한 팀의 멤버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메디아티의 투자사가 된, 널위한문화예술 오대우 님이었다. 말하자면 그때 '예술집단 보름'이 지금 '널위한문화예술'의 씨앗인 셈인데, 그때로부터 약 8개월 후 '널위한문화예술'은 메디아티의 13호 투자사가 되었다.

오늘 소개할 4층 사람들 11번째 주인공은 널위한문화예술의 대표, 오대우 님이다.


대우님, 경력이 무척 다양하다고 들었어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원래 저는 어릴 때 예고, 예대를 가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누나가 먼저 그쪽으로 갔죠. 보컬을 했거든요. 누나가 천부적인 재능도 있고 그에 맞는 노력도 하는 케이스라면, 당시의 저는 딱히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노력도 많이 안 했어요. 집안에 작은 방음실이 있었는데, 헉, 집에 방음실이 있어요? 네, 1평짜리 아주 작은 방음실이요. 누나가 거기에 들어가서 안 나오는 거예요. 누나가 말 그대로 '피 터지도록' 연습을 하는 걸 보면서 나는 안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웃음)

그 다음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일이 음악방송 PD였어요. 윤도현의 러브레터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러려면 뭘 해야지? 보니까 공부더라고요. 그때부터 PD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다가, 대학교에 오고, 군대 다녀오고 나서 콘텐츠 관련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도 직접 콘텐츠 제작을 한 건 아니고, 극장에서 무대 일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기기와도 친숙해 지고 자연히 연이 닿는 단편영화 하는 형, 누나들이랑 같이 일하면서 촬영, 편집을 배웠죠.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음악이랑 다른 매력이더라고요. 내가 원하는 감성을 영상으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겠다 싶어서 혼자 꾸준히 만들었고, 운 좋게 스브스뉴스 인턴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콘텐츠 창작 일에 뛰어들었어요. 재미있었거든요. 사람들 반응을 보는 게.

널위한문화예술 전에 운영하셨던 채널이 있었죠. 이름이 '예술집단 보름'이었나요?

맞아요. 서강대학교 극장 '메리홀' 멤버들끼리 모여서 만든 건데요. "우리 음악도 할 줄 알고 무대도 할 줄 알고 조명도 할 줄 아는데, 아깝지 않냐. 뭐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진짜 (영상) 못하던 시기인데, 조금 할 줄 안다고 자신감은 엄청 가득했거든요. 그냥 카메라 켤 줄 안다고. (웃음) 처음에는 결과물이 엉망이었죠.
그래도 그렇게 뭐든 해보려는 시기가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온 거 아닐까요?
맞아요. 저희끼리도 그런 얘기 많이 해요.
그 이후로 영상 쪽으로 간 친구들도 많고, 누구는 포트폴리오에도 그걸 썼다고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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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서 정체성이 잘 드러나긴 하지만, 그래도 '널위한문화예술'은 어떤 곳인지, 왜 시작하게 되었는지 얘기해주세요.

저는 예전만 해도 관심이 주로 문화예술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어요. 그 분들을 돕는 일을 하자, 그 분들의 콘텐츠가 더 빛날 수 있도록.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고, 결국 창작자도 소비자니까 요즘은 '소비자는 무엇을 바라는가?' 고민을 많이 하고 있고요. 그 관점에서 보다보니 문화예술과 소비자를 잘 매개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비자들이 문화예술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 그런 정보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그나마 있는 정보들도 분산되어 있거든요. 일단 저희는 일반 소비자보다는 '매니아'들에 집중하려고 해요. 결국 문화예술 창작자들도 일종의 매니아니까요.

한 마디로 '문화예술 매니아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다.'
우리가 이야기를 건네면 사람들이 그걸 갖고 잘 놀았으면 좋겠어요. 잘 놀고, 잘 즐기고.

그런 바람이 가장 잘 작동했다고 느낀 콘텐츠는 뭐였나요?

한복 디자이너 목은정 님 콘텐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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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정 디자이너는 저희 멤버 아현 님이 추천해주신 분인데 '퓨전 한복을 왜 지켜야 하는지 설득을 잘 해주시는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현장에서 인터뷰하는데 그 분의 관점이 정말 좋은 거예요. 근데 사실 현장에서 좋은 거랑 콘텐츠가 버징이 되는 건 별개거든요. 한복 같은 소재는 '고전적'이라는 이유로 생각보다 안 먹힐 때도 많고요. 그래서 걱정을 조금 했는데, 콘텐츠가 나오자마자 반응이 확 오더라고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얘기를 담았냐', '담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해줬어요. 독자들이 저희에게 가장 격하게 반응해주었던 때였는데 '더 해달라. 이런 얘기 더 듣고 싶다'며, 메시지도 폭발적으로 왔죠.


콘텐츠 제작 경험이 쌓이면서 독자 반응에 대한 예상 적중률이 조금은 높아지나요? 아니면 늘 비슷하게 어려운가요?

우선 과거에 비해 지금은 저희 팀의 지향점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좋아요나 공유 같은 버징의 규모에 집착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충성도 있게 우리 콘텐츠에 몰입하느냐', '길게 보느냐', '이걸로 어떻게 행동전환이 되느냐' 를 중점적으로 살펴요. 이런 면에서는 점점 더 저희가 예측한 방향과 실제 반응이 일치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에는 특히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들을 많이 다루려고 해요. 마이너한 소재요. 마이너한 소재를 다루더라도, 거기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이너에서 메이저를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더 고민한달까요.
과거에는 소재에서 후광효과를 기대하는 면이 어느정도 있었다면, 이제는 소재보다는 그걸 다루는 방식에서 고유한 노하우를 발굴하려고 하신다는 거죠?
네, 포맷이랑 내러티브에서 승부를 보려고 노력해요. 예전에는 소재 잘 찾아서, 인터뷰이 잘 찾아서, 로 끝났다면 지금은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가 어떻게 먹히는지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죠.

그렇게 생각의 무게중심을 옮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아무래도 '사업화'를 고민하다 보니 우리가 중심으로 가져가야 할 지표가 그 전과 달라지더라고요. 실제로 콘텐츠 제작자 분들 만나서 얘기 나누다 보면 바이럴이나 버징의 규모에 덜 집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아무리 바이럴이 잘 돼도 충성고객으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저희 팀도 "우리 콘텐츠를 기다리는 독자는 얼마나 될까?" 고민을 많이 했고, 그 고민에 충실하다 보니 피봇까진 아니지만 콘텐츠의 모양이 '지속가능성'과 '충성독자 확보'라는 목표에 따라 많이 바뀌었어요.


대우 님은 '취업'의 선택지는 생각해 본 적 없으신가요? 왜 처음부터 '창업'이라는 선택지를 고르셨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전 '미디어'에서 일하고 싶었고 '문화예술'이라는 주제를 폭넓게 다루고 싶었는데, 문화예술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미디어가 잘 보이지 않았어요. 순수예술, 길바닥 예술이 거의 죽어가는 상황인데, 이 상황에 이르기까지 여러 문제가 있겠지만 미디어가 제대로 매개하거나 다루지 못한 책임도 크다고 생각했거든요.

문화예술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살려서 소개할 수 있는 미디어, 문화예술을 즐기는 사람으로서 미디어나 플랫폼에 갖고 있었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하게 됐어요.

생뚱맞은 얘기 하나만 해볼게요. 저는 연극을 정말 좋아하는데, 대학로에 십수 년 째 롱런하는 유명한 연극들이 있잖아요. 근데 그런 대중적인 작품들을 거쳐 간 수많은 관객은 왜 연극이라는 장르의 지속적인 소비자로 전환되지 않는 걸까요?

근데 그 '대중적인 연극'이라는 것도 모수 자체가 굉장히 작아요.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스펙트럼이 촘촘하지 않다는 의미도 되나요? 처음 입문하기 좋은 대중적인 작품들과 예술성 높은 작품들 사이에 사람들에게 징검다리 역할을 할 만한 작품들이 적다는?
네, 저는 사실 대중성과 예술성을 나눠서 보는 걸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웃음) 일단 이어지지 않는 건 작품의 다양성이나 공급단의 문제 뿐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굉장히 클 것 같아요. 보고 있으면 악순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사실 누적 관객수도 많고 흥행에 성공한 작품들도 사정이 너무 어렵거든요. 구조적 악순환 때문에 업계 전체가 침체되고 있는 느낌.
그런 스타트업은 못 나오려나요.
그분들을 위한?
아뇨 아뇨, 센세이셔널한 공연으로 다시 이 장르에 바람을 일으킬 만한. 크루랄까요 극단이랄까요. 이미 있어요 라고 말씀하지 마시고요! (웃음)
아, 이미 있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웃음) 근데 극단이 할 수 있는 역할의 한계도 있고, 어떤 지점부터는 저희가 해야 하는 역할이지 않나 싶어요. 사람들에게 이 연극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중요한 얘기야, 라고 설득하는 작업. 근데 사람들 설득되거든요. '사전 정보가 있으면 예술을 잘 즐길 수 있다.' 근데 그 사전 정보가 불친절해서 그렇지, 우리가 중간에서 그 사전정보를 쉽고 친절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사람들의 세계관을 넓혀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작업들이 조금씩 모여서 변화의 바람을 작게라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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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와서, 요즘 널위한문화예술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이 뭔가요?

확장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요. 이후 스텝을 어떻게 할 것인가. 콘텐츠로는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조금이지만 생겼는데, 그 이후가 어렵더라고요. 유저들을 어떤 행동으로 유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까,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이런 고민을 많이 해요.

그리고 목표를 꾸준히 가져간다는 것도 참 어려운 일 같아요. 제가 좀 팔랑귀인데, 원래 설정했던 목표가 흔들리다가 항상 보면 돌아돌아 다시 그 자리로 오거든요. 물론 더 구체화되어서 돌아와요. 결국 그 얘기가 그 얘기인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방법이 구체화 되어서 돌아오죠. 그래도 어떨 때는 너무 돌아가는 것 같아서 내가 마음을 잘 잡아야겠다, 생각해요. 내가 혼란스러우면 직원들도 혼란스러우니까.

그럼 그걸 겪으며 느낀 게 '구체화되어서 돌아오기 때문에 가치가 있었다. 필요한 과정이었다'랑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오면 내 초심이나 직감을 믿기로 한다' 중 어디에 가까워요?

(웃음)후자는 아니에요. 초심을 지키는 건 중요한데 언제든 바뀔 준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사업이니까요.

그런 고민을 하는 입장에서 주위를 둘러봤을 때 눈에 들어오는 창업자, 크리에이터가 있는지 궁금해요. 행보를 지켜볼 때마다 자극이 되는 사람.

국내에서요?
국내든, 해외든요. 볼 때면 자극이 되는 사람이 있는지. 꼭 같은 업계일 필요도 없고요.
음, 되게 많아서 어렵네요. (웃음)
그래요?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부러운 마음의 기저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제일 자극이 되는 건 본인이 재미있어하는 분야인데 그걸 남들에게 설득도 너무 잘하는 사람을 볼 때요. 콘텐츠에서 내가 이걸 너무 좋아해, 라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단순 인터뷰일 수도 있고 익스플레인드 영상일 수도 있는데, 콘텐츠 내에서 "내가 이걸 너무 좋아해서 너희에게 알려주고 싶어!!" 그런 마음이 절로 묻어나는 게 보이는 사람.
제 기준에선 대우님도 그런 사람인데요.
감사합니다. (웃음) 뭔가를 '잘하는' 것도 멋지지만, 자신이 다루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습이 보이면 그게 또 사람들을 끌어당기지 않나 싶어요.


인터뷰 참 많이 하시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도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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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위한문화예술]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 예술계를 발칵 뒤집다!' 편

최근 백남준 선생님의 다다익선 콘텐츠 준비하며 인터뷰했던 건축가 김원 님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섭외 과정부터 되게 웃겼어요. 콘텐츠 준비하는 과정에서 백남준 선생님 자서전을 읽었거든요. 인터뷰할 만한 분이 없나, 하고 찾아보는데 등장하는 이름마다 지금은 다 돌아가신 분인 거예요.'아 이거 어떡하냐, 낭패다' 싶어서 기대를 다 접고 다른 분들을 찾으려던 찰나에 어디선가 김원 님 이름을 발견했죠. 무려 다다익선을 함께 만든 분인 거예요. 건축계에서도 유명하신 분이고요.
근데 찾아보니까 그 분이 살아계시대요.
일단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웃음)
네, 정말 감격. 그러면 연락을 한 번 취해보자. 근데 그분이 언론에 노출된 적이 거의 없어요. 다다익선 관련 뉴스가 되게 많이 나왔는데 그분 인터뷰가 실린 곳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 분께 메일을 드리고 전화를 드렸는데 받더니 '누구냐' 하시더라고요. 근데 저희를 당연히 모르시죠. SNS도 전혀 모르시고. 그런데 저희가 영상 하는 애들이라고 하니까, '영상'을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소개를 마치고 저희가 인터뷰를 하고 싶다, 다다익선 이번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번 사건'이 뭔질 모르시는 거예요. 그분께 연락이 아예 안 간 거죠. 국립현대미술관도 그렇고 어디에서도 연락을 안 한 거예요. 다다익선을 같이 만든 분인데 모르는 게 말이 되나? 저희가 설명을 드리니까 "꼭 와라, 내가 해줄 말이 있다"고 하셨어요. 더 신기한 건 혜화동 저희 사무실 바로 옆 건물에 계시더라고요.

그분을 만나고 나서 기획이나 방향이 정말 많이 바뀌었어요. 도움을 정말 많이 주셨죠. 그날은 정말 인터뷰이에 압도되었어요. 인터뷰도 거의 안 해보셨고 영상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말씀도 잘해주시고 그 분의 말씀 하나하나, 캐릭터 자체 모두 인상 깊었어요. 저희에게 해줄 얘기가 너무 많으신 거예요. 나중에는 "와줘서 고맙다"고 하셨어요. 나중에 콘텐츠 완성된 후 보여드리니까 되게 좋아하셨는데, 그 경험이 제일 기억에 남네요.


가끔은 콘텐츠 만드는 일이 고단하지 않으세요?

가끔이라뇨? 항상 고단합니다. (웃음) 특히 이제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 안 되니까요. 지표로 성장을 증명해야 하고. 가끔 목표로 삼은 걸 가끔 못 맞추는 경우가 생겨요. 그럴 때는 많이 아쉽죠. 항상 어려워요. 저희는 특히 외부 소스를 많이 써서 협조를 구할 일이 많은데 그런 것들은 저희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잘 안 풀릴 때 좀 힘들죠.

대우님 그래도 투자 유치 단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다른 두 분과 함께 해오셨는데, 세 분이 지금까지 갈라서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던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희 되게 많이 싸우거든요. (웃음) 저희 회의하는거 보면 가끔 소리도 커지고 살벌할 때도 있는데, 왜 그러냐면 세 명이 바라보는 관점이 극명하게 달라요. 전 분석적으로 보려는 편이고, 아현 님은 직관을 중시하고, 용기 님은 둘의 노선에 가운데에 있으면서 '안 본 눈'의 역할을 해주세요. 용기 님은 저희 둘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을 즐긴지 얼마 안 됐거든요. 그런 차이가 밸런스의 요점이 되지 않나 싶어요. 기획 단계에서 특히나 그렇고. 제작 단계에서는 서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얘기하면 다들 잘 따라주고, 합이 잘 맞죠.

세 분의 케미가 형성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셋이 다르다는 걸 모두 알고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네, 그리고 저희는 그게 있어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리더라도 결국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이요. 한 가지 주제를 갖고도 3~4시간씩 얘기할 때가 있거든요. 사실 따지고 보면 되게 비효율적인 일이에요. 근데 장기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서너 시간 동안 얘기 나누며 서로의 관점을 파악하고, 각자의 의견을 한바탕 쏟아내는 게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게 가능한 분위기고, 결과적으로는 그 과정을 거쳐 좋은 결론을 내려왔고. 서로 그런 신뢰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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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대우님이 특별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누구인지, 이 글을 읽는 분들과 나누고 싶은 그의 말이나 작품이나 있다면 함께 소개해주세요.

(웃음) 아 너무 어려워요. 준비라도 해올걸.
이런 건 원래 준비 안 하고 말하는 거예요.
저도 책 보는 걸 좋아하는데, 임솔아 시인을 무척 좋아해요. 인터넷에 '임솔아'라고 검색하면 레이싱 모델분이 나오시는데 (웃음)
아, 꼭 '임솔아 시인'까지 같이 검색해야겠네요.
네 (웃음) 그 분 글이 되게 좋아요. 시도 쓰고 소설도 쓰시는데. 우선 혁명적이고요. 얼마 전에 창비 사건으로 유명해졌는데 무슨 일이냐면, 창비에서 임솔아 시인의 작품으로 무단으로 연극을 만들었어요. 근데 그 해에 또 창비 문학상을 받으신 거예요. 그래서 단상에서 수상소감을 말씀하시다가 "그런데 제가 저작권법으로 창비를 고소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웃음) 송곳 같은 분이에요. 글도 좋고, 글에 담긴 철학도 좋고. 살아가는 가운데서 송곳 같이 튀어나오는 말 많이 해주시거든요.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 해주시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아티스트요. (웃음)

저도 임솔아 작가의 <최선의 삶>이라는 소설 읽고 문장이 참 좋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네, 그럼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대우님 시간 되실 때, 임솔아 시인의 좋은 시 한 편 알려주세요.

네, 그럴게요. (웃음)


모래

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이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박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임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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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백 선생이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그 유명한 말 알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이천년을 내려와도 예술은 예술이고 그때 그걸 만든 사람들은 다 죽어서 아무도 기억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을 믿는데, 그걸 한마디로 엎어버린 거야. 예술이 지금 예술이고 그 후는 난 모른다는 거지. 지금 여기서 번쩍번쩍하는 이게 중요하다는 거죠. 백 선생이 한 일들을 생각해보니까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고. 백 선생이 예전에 한 예술들 중에 피아노를 때려 부순다든지 한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기록이나 기억, 사진으로 남아있는 걸로 끝이지 그 장면이 다음에 그대로 완벽하게 재현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예술은 정말 찰나의 것인가 봐요." (건축가 김원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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