닷페이스 스탠리인규브릭을 만나다

4층 사람들 07. 닷페이스 리인규

이미진 · 2017년 10월 11일


<4층 사람들>은 저희 Mediati 사무실에 서식하며, 이곳에서 먹고 졸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저희 사무실이 4층에 있어 '4층 사람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인터뷰 콘셉트 및 주제는 그때 그때 필자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저는 연극영화과를 나왔어요.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무대 일을 했죠. 그거밖에 없어요. 영상은 학교에서 배우기는 했지만 가짜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자처하며 살았거든요. (하하) 근데 여러가지가 잘 안 됐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었다고 해야 하나. 극단에서 일했었거든요. 연기도 하고 스텝도 하고 여러가지 했는데, 그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 무렵 제 옆에 카메라가 있었는데 마침 동영상 기능이 되는 카메라였거든요. 그렇게 영상을 처음 시작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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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인규 님은 닷페이스에서 영상을 촬영하고 편집하며, 팀에 영감을 불어넣는 필름 메이커다. 인규님께 자신을 짧게 소개를 해달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닷페이스에서 ‘딴따라’를 맡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예정인 필름 메이커 리인규입니다.” 스스로 장비병이 심하다고 말하는 그는 손에 블랙베리를 들고 있었다. 스펙 면에서는 ‘쓰레기’인데 쉽게 포기할 수가 없단다. 이유는 단 하나. 멋있어서.

“멋지지 않나요?”

멋있다, 정말로. 아니 아니, 블랙베리 말고. 인규 님의 영상 말이다. It’s so cool. 거창한 수식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단지 ‘멋있다’고만 칭찬하는 것이 왠지 심심하게 느껴진다고? 댓츠 노노. 어떤 작품은 칭찬할 때 긴 말이 필요 없는 법이다. 인규님의 영상은 주로 닷페이스에서 만나볼 수 있지만, 좀더 개인적인 시선이 담긴 작품들은 그의 인스타그램(@inkyuparty)에서 접할 수 있다. 꼭 한 번 보시라. 돈을 내지 않고 이런 영상을 보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감각적이고 멋진 영상들이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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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규의 instagram (@inkyuparty)

어쩌다 보니 인규 님께는 ‘어쩌다’를 참 많이 물었다. 어쩌다 영상을 하게 되셨어요, 어쩌다 닷페이스에 합류하게 되셨어요, 어쩌다 블랙베리를 사게 되셨어요 등등. 인규 님은 사소한 질문 하나에도 곰곰이 생각하고, 어느 하나 허투루 대충 답해주는 법이 없는 인터뷰이였다. 자신을 향한 모든 질문에 최선의 대답을 낳아주기 위해 애쓰는 그를 보니 ‘이 사람, 영상 만들 때도 이렇겠구나.’ 싶었다. 독자인 내게는 그와 팀의 멋진 결과물만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할지. 소파에 앉아 소처럼 큰 눈을 천천히 굴리는 인규님을 보니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까 연극을 하던 시절에 영상은 가짜라고 생각했다고 하셨잖아요. 그 얘기 좀 더 해주실 수 있어요?

당시에 저는 배우였는데요. 숭고한 예술의 가치, 순수 예술, 그런 허세가 되게 심하게 박혀 있던 사람이었어요. (웃음) 그래서 그냥 상업영화에 뛰어드는 건 자존심이 상했고, 연극을 하며 그런 영상들은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멍청한 생각이죠. 지금은 영상이나 영화를 바라보는 눈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술에 대한 허세를 완전히 버렸다기 보다는 조금 더 포용력이 많아졌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는 ‘아 저런건 예술이 아냐, 저런건 가짜야.'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어, 저것도 되게 멋있다’ 하며 조금 더 넓게 생각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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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규 님은 닷페이스에서 맡은 역할을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고 있어요?

닷페이스에서 저를 얘기하자면, 다른 분들은 다들 저널리즘을 공부하시고 기자나 PD를 준비하셨던 분들인데, 저는 그 사이에서 그냥 ‘딴따라’거든요. 앞으로도 그렇게 남고 싶고요. 더 그럴듯하게 말하자면 ‘예술가’가 되고 싶죠. 고마운 건 닷페이스가 그런 저의 꿈과 가치를 계속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거예요. 제가 명함에 일부러 비디오 디렉터라고 안 하고 필름메이커라고 썼어요. 일을 할 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저만의 크리에이티브함을 가져가고 싶어서.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할 때 다른 팀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인규 님은 어쩌다 닷페이스에 합류하셨어요? 뭘 보고?

뭘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제가 닷페이스 들어가기 전에 미스핏츠라는 곳에서 영상 팀을 하고 있었는데 그 팀이 해체되고 잠깐 동안 웹드라마 팀을 했었어요. 오주영 팀장님과. (지금도 팀장님이라고 불러요.) 드라마 일을 하다가 어쩌다보니 조소담 대표의 부름을 받아서… 그런 거 있잖아요. 원피스 보면 루피가 ‘너 내 동료가 돼라’하면 곧이곧대로 동료가 되잖아요. 저도 그런 셈이에요.

닷페이스에서 만든 영상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야설가 민서영씨 영상과 드랙퀸 영상이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그때가 제게 딱 터닝 포인트였거든요. 그 전까지는 ‘나는 영상을 하고 있지만 아직 아마추어고, 이제 막 영상을 시작한 아기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그때를 계기로 ‘이제 나는 프로가 되어야지’ 생각하게 됐거든요. 아마추어보다는 프로에 조금 더 가까워진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 영상들 이후로 스스로도 책임감, 부담감도 많이 느끼게 됐고 더 잘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본인이 만든 영상 자주 (다시) 보세요?

그럼요. 제가 만들었던 영상을 쭉 다시 보는데, 그때마다 지금 만들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창작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아물지 않는 상처를 자신에게 계속 내는 거잖아요. 저 역시 창작을 하며 내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내고 있고요. 글 쓰는 사람은 자고 일어나면 어젯밤 썼던 내 글이 오그라들 듯이 영상도 만들고 나서 다음날 보면 ‘내가 이걸 만들었다고?’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럴 때면 내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하며 얼마나 더 상처를 받아야 할까, 이런 생각도 해요. (인규님도 그래요?) 네, 지금도 그래요. 물론 영상이 나오고 사람들이 그 영상을 좋아하면 뿌듯하지만, 개인적으로 ‘아 이거 조금만 더 할걸' 이런 생각을 하죠. 아쉬워 한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서 잘 한다고 칭찬해 주시니까 좋기는 한데 아쉬워요. 항상 아쉬운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올리시는 영상들, 정말 좋더라고요.

감사해요. 닷페이스 외에도 제 개인 영상작업을 계속 하고 싶은데 마땅히 시간적인 여유도 없고 그래서, 틈틈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인스타그램에 깨작깨작 올리는 수준이에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볼 때와 그냥 세상을 바라볼 때 차이점이 있나요?

많이 달라요.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볼 때는 뭔가 그림을 그리는 거랑 비슷할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릴 때도 사람마다 자주 쓰는 색깔이 있고 표현 기법이 있잖아요. 영상을 할 때도 여러가지 연출 기법들이 있을텐데 제가 많이 쓰는 건 느리게 재생한다거나 감성 감성한 색깔을 씌운다거나 하는 거거든요. 그런게 다 제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저만의 방식이고 기법인데,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볼 때는 제가 보는 장면에 저만의 시선과 감성을 덧씌우게 되죠.

막연히 바라는 미래의 그림이 있어요?

있죠. 좋은 사람들과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건데, 이렇게 대답하면 너무 재미가 없겠죠? (하하) 저는 돈이 있어서 제가 살 곳을 고를 수 있다면.. 합정역 메세나폴리스에 살고 싶어요. 꼭 거기가 아니여도 한강이 보이는 곳. 제가 그런 데서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장소들. 지나치는 장면들. 그래서 공간이 제게는 되게 중요한데, 지금은 5평짜리 원룸에 살고 있어서 여기에서 영감을 찾기는 좀 힘들고.. (웃음)

집이 아니라면 어디에서 영감을 많이 얻으세요?

지나다닐 때요!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나 어느 거리를 걸어갈 때. 예를 들어 저희 지금 있는 이 카페만 해도, ‘여기 벽지는 질감이 이러니까 촬영을 하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항상 머릿속으로 하고 있거든요. ‘저 시멘트는 항상 푸른 빛이네. 촬영하면 이렇게 나오겠다.’ 물론 그 장소를 벗어나면 바로 잊어버리기는 하는데, 그래도 영상을 하며 생긴 저만의 습관이죠.

듣기로는 장비병이 있으시다고..

네 맞아요. 병. 정말 병입니다. (웃음) 제가 영화 같은 영상물도 좋아하지만 ‘테크’적으로도 되게 좋아해서요. 카메라나 기타 장비들 맨날 찾아보고, 그런 욕심이 좀 있죠. 유튜브에서 보고 숄더리그 같은 것도 DIY로 만들고.. 그런 방법들이 유튜브에 다 나와 있거든요. 아, 정말이지 제 아이디어의 원천은 비메오(vimeo)와 유튜브, 멜론입니다.

지금처럼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한다고 했을 때 궁극적으로 어떤 색깔을 가진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사실 그게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점인데요. 저는 제 취향도 확실하고, 제가 원하는 스타일이 뭔지도 잘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저의 ‘시그니처’라고 할 만한 구체적인 캐릭터를 갖지는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저만의 옷을 입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굳이 말하자면 제 영상이 지루하지 않고 섹시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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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닷페이스 팀원들에게 한마디!

음, 고마워요. 고맙다는 말을 제일 하고 싶어요. 참 대단한 게, 팀이 안 좋은 상황을 겪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도 다들 대수롭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고, 그러다보면 정말 대수롭지 않아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팀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게 일할 때 톱니바퀴가 착착 맞아 돌아가는 게 보여요. 그때마다 너무 신기하고, 정말 대단하다 싶고. 이런 사람들이랑 일하는 게 뭔가 자부심도 생기고. 잘하잖아요, 멋있고. 리스펙 하죠. 닷페이스 사랑합니다.

저는 외동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뭔가를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하고 남이랑 같이 일할 때 힘들어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근데 닷페이스에서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좋아요. 저는 집에 있을 때도 공상을 많이 하고, 제 내면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 걸 카메라로, 영상으로 많이 해소하는데 닷페이스에서는 그냥 그래도 돼요. 저 있는 그대로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하고, 다들 좋아해 주니까. 제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 꼭 놀이터 같아요. 저 혼자 뛰어놀 수 있는.

사진은 모두 인규님께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