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 주제의 다양성 보고 합류했어요.''

[4층 사람들] #06. KOREA EXPOSÉ 강혜련

이미진 · 2017년 0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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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스타트업의 고민이 한 둘이겠냐만은, 가장 큰 고민은 아마 ‘인재 영입’일 것이다. 비단 미디어 스타트업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식구를 ‘잘’ 늘리는 일은 이 땅의 모든 스타트업에게 가장 힘든 숙제다. 그런데 그 힘든 숙제를 참 잘 해내는 팀이 있다. 대한민국 No.1 영문 뉴스 매체를 꿈꾸는 코리아 엑스포제다. 코리아 엑스포제는 사람을 참 잘 모셔온다. 작년에 책상 둘, 의자 둘로 입주한 코리아 엑스포제는 지금 다섯개의 책상과 일곱개의 의자로 몸집을 늘렸다.

코리아 엑스포제는 어렵게 모셔온 인재에게 팀을 위해 헌신할 것만 요구하지 않는다. 그 인재가 팀에서 빠르게 적응하고 최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팀원이 마음을 쓴다. 지난한 과정이지만 그 과정 끝에 결실이 찾아온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로 자신감이 붙어 KE Journalism School도 론칭했다. KE Journalism School은 코리아 엑스포제의 비지니스 모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KE의 철학에 어울리는 인재를 육성하고 영입하겠다는 포부이기도 하다.

이번 4층 사람들의 주인공인 강혜련 Managing Editor 역시 코리아 엑스포제가 가장 ‘잘 모셔온’ 인재 중 한 명이다. 혜련 님은 NPR에서 News Assistant로 경력을 쌓은지 2년이 되어갈 무렵 구세웅 대표의 제안을 받고 코리아 엑스포제에 합류했다. 조직의 규모는 작아도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책임이 큰 곳에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안녕하세요, 혜련님! 4층 사람들 인터뷰에 흔쾌하게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우선 혜련님을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으악! 저는 자기소개가 제일 부담 돼요. 제가 왜 간단한 자기소개에 부담을 갖냐면요. 20대 중반에 제 친구들이 취업준비하는 걸 지켜보면서 얻은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면접 준비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는데 어떤 친구가 ‘저는 매사에 긍정적인 캔디같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는 걸 보고는.. (웃음) 전 매우 드라이하게 하겠습니다. 흠흠. 전 코리아 엑스포제 편집장 강혜련이라고 하고요. 88년 11월 15일, 밤 열 두시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회사 주재원 생활을 오래 하셔서 어릴 적부터 유학생활을 되게 오래 했고요. 인생의 절반 정도를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울산에서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니고, 터키에서 초등학교 몇 년 다니고 중국에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고요. 대학교는 미국에서 나왔고, 대학 졸업한 6년 전에 한국에 들어오게 됐죠.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도 유창하시잖아요. 언어에 제약을 받지 않는 편이니 굳이 활동 무대를 한국으로 삼을 필요는 없었을텐데, 졸업 후 한국행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실 한국 말고 다른 곳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제 성장 배경과도 맞물려있는 일인데 저희 부모님, 특히 아버님이 굉장히 보수적이세요. 그리고 애국심이 투철하셔서, 외국생활을 오래 할 때 항상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는 한국인이 되어라', '한국인은 한국인답게 행동해라' 이런 식의 세뇌교육을 많이 시키셨거든요. (아버님, 죄송하지만 세뇌교육은 세뇌교육이에요.) (웃음) 그런데 정작 저는 계속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할 방법이 없고 오히려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고정관념 같은 게 많이 굳어진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스스로 질문하고 생각해볼 시간이 많이 부족했고, 그걸 깨고 싶어서 대학 졸업하고 무작정 한국으로 왔어요. '한국인'이 뭔가. 내가 지금까지 생각했던 애국심이라는 게 뭔가. 이런걸 지난 6년간 한국에서 직접 살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했는데, 한국에 사는 게 답답할 때는 없어요?

당연히 있죠. 처음에는 제가 생각했던 한국인으로서의 저 자신의 이상과 실제 저라는 사람의 현실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 거기에서 오는 괴리감도 컸고, 다른 사람들이 저에게 강요하는 한국인의 모습, 특히 가족과 친구들이 강요했던 ‘정상적인’ 한국인의 모습이 굉장히 부담스럽게 다가왔어요. 예를 들면 한국 사회에서는 그 나이대에 속해야 할 정상의 범위라는 게 있잖아요. 그리고 그게 굉장히 눈에 드러나는 것들일 때가 많잖아요. 대학을 졸업하면 특히 저같은 '엘리트 코스를 밟은’ 유학생들은 대기업, 아니면 굉장히 보수가 좋은 곳에 공채 준비를 해야 하고 결혼 적령기가 되면 결혼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고, 이런 공식이 존재하잖아요. 한국에 있으면서 그런 공식에 제 자신을 끼워 맞춰야 하나 이런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한국에 와서 처음 4개월은 토플 학원에서 일했거든요. 돈도 잘 벌었는데, 어느 날은 제가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지금 이 나이에 서울에서 직장을 찾아야지’ 이런 생각을 문득 한 거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 생각이 드니까 약간 무서워지더라고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그래서 다 내려놓고 정처없이 여행을 다니다가 어느 농촌 마을에서 살게 됐어요. 단양 한드미마을이라는 곳인데, 그곳에서 영어 교사, 생활 지도 교사로 일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도 가르치고, 텃밭도 가꾸고 여행도 기획하며 지냈죠. 그 시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게 지금 제 인생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그러면 처음 언론인으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뭐였어요?

사실 '저널리즘'을 경험할 기회는 고등학생 때부터 약간씩 있었어요. 고등학생, 대학생 때 학교 신문사에서 일했었고 대학 다니며 인턴십도 몇 번 했었고요. 정말 진지하게 커리어로 생각했던 건 단양에 있을 때였는데요. 그때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았거든요. 페이스북도 많이 했어요. (웃음) 그런데 페이스북을 보면 대학때 같이 생활 했던 친구들 중에 제일 질투심을 유발하는 애들이 기자가 된 애들인 거죠. 그래서 ‘아, 내가 여기에 뭔가 있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싶어서 정식으로 기자를 한 번 해보자, 해보고 나서 안 맞으면 다른거 하면 되니까! 하고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어요.

처음부터 좋은 기사를 잘 쓸 수 있는 건 아니었을텐데, 글 못 써서 혹은 안 써져서 고생하거나 힘들었던 경험은 없어요? 이를테면 ‘올챙이’ 시절의 재미난 일화 같은 거요.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 너무 많아요. 지금도 척척 잘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아니에요. 한참 고민하다가 밤에 잠들려고 누웠는데 새벽 두시에 갑자기 생각나서 그때 막 쓸 때도 있고. 하, 정말.. 겨우 겨우 쓸 때도 있고요. (웃음)

아무튼 올챙이 시절. 제가 2012년도에 베를린에서 인턴십을 했었어요. zitty라는 잡지사에서 인턴십을 했는데, 거기 에디터가 "네가 외국인으로서 베를린을 경험하는 거니까, 그리고 네가 재즈바 좋아한다고 했으니까 베를린의 재즈바들을 둘러보고 거기에 대한 리뷰를 써봐." 한 거예요. 그때 제가 너무 의욕이 넘쳐서 일주일에 거의 서너번을 재즈바를 갔어요. 기자라고 하고 재즈바를 가면 와인도 공짜로 주고, 입장료도 없고 하니까 너무 열심히 다녔거든요. (웃음) 그래서 굉장히 괜찮은 재즈 뮤지션들도 취재하고, 취재 자체는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했어요. 그런데 막상 앉아서 기사를 쓰려니까 머릿속에 잡다한 소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사실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기사라기보다는 한 편의 보고서를 썼어요. (웃음) 제가 취재한 모든걸 정리하는. 그걸 본 에디터가 '너 정말 열심히 한거 알겠는데 이거 못 내겠다'고 해서 결국엔 기사가 킬 됐죠. 그 후로 저는 그간 취재한 모든 취재원들에게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이런 메일을 보내야 했고, '제가 쓴 글이 들어있는 구글 드라이브 링크라도 보내드릴게요.' 했던 기억이.. 있네요. (웃음)

위 에피소드가 글쓰기 자체의 문제였다면 다른 하나는 저널리스트로서 윤리의식이 제대로 안 잡혀서 실수한 적도 있었어요. 한 번은 저와 인터뷰를 한 인터뷰이가 저보고 인터뷰한 내용 좀 보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원래 기사를 쓰고 나서 나오기 전까지는 그 결과물을 취재원에게 보여주면 안 되거든요. 기사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에. 근데 그 때는 그걸 몰랐고, 저는 당연히 ‘알겠어요. 이메일 보내드릴게요!'했더니 그분이 자기 답변을 자체적으로 수정, 편집을 해서 보내주신 거예요. 이렇게 내보내라고. 저는 그때 너무 어렸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 '아,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아요. 그 기사가 다른 이유로 안 나가긴 했는데 어떻게 보면 다행인 거죠. 그 후에 NPR에서 일하면서 확실하게 선을 긋고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는 습관이 길러진 것 같아요.

혜련 님은 영감이 왔을 때 후루룩 써버리는 스타일이에요? 아니면 천천히 고민하며 한 줄 한 줄 써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아, 그게 저희 팀이 다 다른데요. (웃음) 세웅님은 어떤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하면 그 주제와 관련된 다른 콘텐츠를 하나도 안 보세요. 혹시나 영향을 받아서 비슷하게 쓸까봐. 그리고 본인의 필이 꽂힐 때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쓰시고, 속도도 굉장히 빠른 편이에요. 근데 저는 둘러볼 거 다 보고 읽어볼 거 다 보고 취재할 거 다 하고 나서 어느 정도 제 몸에 소화가 됐을 때 글이 나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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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EXPOSÉ 구세웅 대표와 강혜련 편집장 (출처:Haeryun Kang Facebook)

NPR을 그만두고 코리아 엑스포제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뭔가요?

제가 제대로 된 언론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2015년 NPR 국장님 어시스턴트로 일한 거였거든요. 제가 그 일을 할 때 '남들이 돈 주고 하는 저널리즘 대학원을 나는 돈 받고 한다고 생각하자' 마음 먹고 2년동안 어시스턴트 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보니 점점 글을 쓸 기회도 조금씩 주어지고 혼자 취재할 경험도 많이 얻었죠. 그러다가 제가 스스로 더 크게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세웅님이 제게 와서 코리아 엑스포제에 합류하지 않겠냐 제안을 하셨어요. 그게 한 1년 반, 2년차 쯤 됐을 때였어요.

뭘 보고 '오케이!' 하셨어요?

제일 큰 부분은요. 한국에 대해 다룰 수 있는 주제가 다양하고, 기자 개개인에게 주어지는 자유가 훨씬 더 크다는 점. 사실 큰 언론사에서 일하다 보면 자기가 원하지 않는 스토리를 할 때도 많고 아무래도 외부 압력에 의해서 이런저런.. (웃음) 그런데 코리아 엑스포제에서는 확실히 에디터의 역량에 맞춰서 섹션을 길러주고 스토리를 개발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NPR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것과 코리아 엑스포제의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나요?

저희 코리아 엑스포제는 미디어 스타트업이니까 1부터 10까지 다 생각해야 하잖아요. 기획하고 취재하고 쓰고 프로모션까지. 근데 NPR은 프로모션 단계가 생략되고 워낙 브랜드 이미지가 좋은 대형 언론사다 보니까 그런 걱정을 따로 안해도 되니 그게 편하죠. 취재 과정에서는 제가 느끼기에 그렇게 다른 점은 없어요. NPR에서 배운걸 토대로 코리아 엑스포제에서 취재를 하기 때문에. 사실 NPR도 미국에서는 누구나 아는 언론사지만 한국에서는 주파수가 안 잡히니까 확실히 많이 모르시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취재하는 과정에서 설명을 많이 해야 했어요. 청취자 수가 얼마고요, 이러면서 다 설명을 해야 했는데 코리아 엑스포제도 똑같은 거죠. 물론 소개하는 내용 자체는 NPR이 훨씬 더 스펙이 좋으니까 정부 엑세스를 받거나 할 때 약간 더 수월한 건 사실이에요. 근데 그게 제게 큰 차이로 다가오지는 않아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으며 ‘내 몫’만 잘해내면 되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비지니스 모델도 걱정해야 하고 조직 경영 문제도 신경써야 하고, 고달플 때가 분명 있을 것 같아요. 혹시 미디어 스타트업 시장에 뛰어든 걸 후회할 때도 있어요? 솔직하게... :D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전 확실히 이런 환경이 제게 더 큰 활력소가 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NPR에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항상 상사와 같이 일하는 입장이다보니 제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았어요. 답답했던 부분도 있었고. 그런데 코리아 엑스포제에서는 저뿐만 아니라 인턴들까지도 맡을 수 있는 권한이나 일의 범위가 훨씬 더 넓으니까 저널리스트로서 (인간으로서-라고 하려고 했는데 너무 촌스러운 것 같네요. 하하)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에요. 세웅님이랑 며칠 전에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특히 비지니스 모델 때문에 힘들어할 때였어요. 얘기를 나누다가 제가 맨처음 코리아 엑스포제 합류할 때 시드 투자 기간 끝나고 6월 30일 이후에 백수가 될 각오로 들어왔다고 했거든요. 만일 그때의 제가 지금 이렇게 힘든 상황을 알았더라도 저는 들어왔을 거다, 이렇게 말했죠.

코리아 엑스포제의 편집장으로서 '좋은 뉴스 기사'의 최소 요건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혜련님 만의 기준이 있나요?

네! 네 개나 있어요. 우선 저는 주장하고자 하는 바나 보도하려고 하는 정보의 팩트 체크가 확실히 되어 있어야 해요. 그게 안 되어 있으면 얼마나 오리지널 하든, 문학적으로 잘 썼든 소용이 없어요. 저희도 인턴들에게 항상 세뇌시키는게 연합뉴스나 경향뉴스 보도 인용하지 말라는 거거든요. 거기에서 쓰고 싶은 게 있으면 'primary source'라고 하나요? 원 소스를 찾아서 확인하고, 거기에서부터 시작을 하라고 얘기해요. 팩트체크 없이 연합뉴스 보도만 인용을 해서 그런 세월호 오보 사건 같은게 발생한 거니까. 두번째는 오리지널한 앵글이에요. 이 기사가 다른 수많은 기사와 비교했을 때 어떤 새로운 질문을 제시하는가. 세번째는 문학적 가치. 아무래도 문학적 흐름이 좋아야 사람들이 읽고 재미 있어 하기 때문에. 이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재미가 없으면 잘 안 읽는다는 거. 그 기사가 아무리 가치 있는 기사라고 해도 말이에요. 마지막은 편집이에요. 저희 코리아 엑스포제에서는 최소 두 명이 한 기사에 달라붙어서 편집을 해요. 기자를 제외한 두 명. KE radar같은 짧은 기사는 두 명 정도 편집을 보고, 길이가 긴 feature 기사는 두세 명 정도가 봐요. 저, 세웅님, 벤, 스티븐 이렇게 넷이 편집에 참여하죠.

편집을 하게 되면서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든 것에 대해 속상할 때는 없어요?

당연히 있죠.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니 우리끼리 떠넘기는 경우도 많고요. (웃음)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니까 생략할 수 없어요.

혜련님은 어떤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고 싶으세요?

그게 끊임없는 고민인데요. 작년 11월에 코리아 엑스포제에서 '각자 하나씩 섹션 에디터를 맡자. 그래야 자기 섹션을 개발하고 한 분야 전문성이 높아질 수 있으니까' 의견이 나왔었거든요. 근데 전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뭐 하나를 딱 맡아야 할지 모르겠는 거예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래서 '잡 스토리 에디터' 이렇게 할까 하다가 (웃음) 우선 identity를 맡았어요.

identity라는 게 feminism/LGBTQ와 같은 정체성부터 시작해서 한국인이란 무엇인가, 인종 차별 등 광범위한 섹션이기 때문에 '내가 뛸 수 있는 공간이 넓겠다' 싶어서 맡았는데,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다 보니까 썩 잘 지켜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비단 저뿐만 아니라 코리아 엑스포제의 다른 에디터들도 한 섹션에 머물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주로 하기 때문에 특정 분야가 없는 것 같아요. Ben도 환경 에디터긴 하지만 저희 radar에서 가장 인기 많았던 스칼렛 요한슨과 박근혜 기사를 쓰기도 했고, 종교에 관한 보도도 했고요. 이런 다양성, 특히 저희는 스타트업이니까 기자 개개인 다양성이 중요한 역량인 것 같아요.

코리아 엑스포제는 기사가 올라간 후에 그 콘텐츠에 대한 평가나 회고 작업도 하세요? 독자들 반응이라든지.

처음에는 주기적으로 피드백 미팅을 했어요. '지금까지 썼던 기사 10개를 골라 1시간 회의 시간 동안 분석을 하자' 했는데 이렇게 사무실을 공유하고 가까이에서 일하다보니 굳이 그렇게 미팅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때 그때 피드백이 항상 오기 때문에. 그리고 저희는 발행 전 편집 과정에서 피드백을 굉장히 가차없이, 잔인하게 하기 때문에 발행 후보다는 발행 전 편집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일할 때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가요? 조직 내에서 팀원들을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데 마인드 컨트롤은 어떻게 하는 편인지 궁금해요.

당연히 감정기복 있죠. 저도 사람이고 짜증날 때도 있고 기분 좋을 때도 있는데. 음, 저는 무조건 화를 참는다고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가끔은 자기가 화났다는 걸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게 효과적일 때도 있거든요. 근데 그것도 화내기 전에 어느정도 계산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무조건 화를 내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화를 내면 상대방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항상 먼저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아무리 화가 나도 인신공격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해요. 제가 이전에 일했던 다른 직장에서는 그런 경험이 좀 있었거든요. 일을 못했는데 그 일에 대한 피드백이 아니라 '너는 왜 이딴 식이냐', '너는 왜 사람이 이정도밖에 안되냐' 이렇게 지적하는 상사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되면 일에 대한 피드백이 머릿속에 전혀 안 들어와요. 인신공격만 기억에 남기 때문에. 아, 그리고 매니저 입장에 있으면 화를 낼 때 그 화에 대한 적합한 이유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제가 화를 표현하는 게 정당화되죠. 안 그러면 분풀이잖아요.

물론 제가 아무리 참고 논리적으로 화를 표현하려고 해도 일이 너무 안 돼 있을 때 어쩔 수 없이 표정에 드러나는 경우는 있죠. 그건 뭐, 어쩔 수 없죠. 저도 사람이니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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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엑스포제 하며 가장 즐거웠던 경험이 있다면?

저는 사실 날마다 즐거운데.. 그렇게 말하면.. (웃음)

저는요. 개인적으로 취재하는 과정에서도 당연히 즐거운 일들이 많았지만, 인턴 분들과 같이 지내며 성장했던 게 가장 보람있고 즐거웠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처음에 지은님, 서회님 오셨을 때 문법도 종종 틀리고 연합뉴스 인용도 많이 하시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이 분들이 어느 세월에 기사를 3개 쓰실까' 했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성장하셨고 스스로 자신감이랑 의욕이 많이 생기니까 취재도 더 적극적으로 하시고요. 저희 인턴 분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걸 지켜보는 일, 그리고 그 분들이 즐거워하는 걸 보는 일. 그게 제일 즐거웠던 경험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에요! 해외 매체 중에서 ‘한국에 이런 곳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곳이 있나요?

사실 코리아 엑스포제에 합류하면서 뉴스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어요. NPR에 있을 때보다는 확실히 덜 보죠, 바쁘니까. 집에 가도 뉴스와 관련되지 않은걸 소비하고 싶어서.. 그래도 뽑아보자면, 제가 굉장히 존경하는 매체가 '프로 퍼블리카'에요. 탐사보도 매체인데 한국에도 그런 매체가 꼭 생겼으면 좋겠어요. 사실 미디어 스타트업 중에서 재미있고 viral한 콘텐츠를 만드는 곳들도 좋지만, 단시간에 돈이나 트래픽을 이끌지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가치 있는 스타트업을 발굴해서 펀딩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건 확실히 좀 편파적인 발언이긴 한데 (웃음) NPR이 본받을 점이 참 많은 것 같아요. NPR은 미국 언론사 중에서도 덩치가 꽤 큰 편이지만 디지털로 굉장히 다양한 실험을 많이 하거든요. 스냅챗으로도 실험을 많이 하고, 재미난 비디오도 많이 만들고, 팟캐스트도 하고. 탐사보도도 하고요. 그런걸 보면 딱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방법 만을 고집하려고 하는 게 없구나. 큰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도전적이고 모험의식이 있구나 싶어서 존경스러울 때가 많아요.

감사합니다, 혜련님. 여기까지 할게요! 헉, 벌써 오전이 다 갔네요. 제가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나봐요. 오후 바쁘게 보내시고, 한 달 동안 미국 잘 다녀오세요.

네, 깔깔깔.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