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장벽의 시대’가 보여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진화

워싱턴포스트의 새 멀티미디어 스토리 ‘새로운 장벽의 시대’(A New Age of Walls)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영역에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mediati · 2016년 12월 25일

21인치 모니터 스크린을 가득 메우는 감성적인 영상들, 흘러가는 영상 위로 몰입을 유도하는 재잘거리는 새소리, 이슈의 심각성을 인지할 수 있는 시각적인 인포그래픽, 그리고 드문드문 정보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분석글까지…. 워싱턴포스트의 새 멀티미디어 스토리 ‘새로운 장벽의 시대’(A New Age of Walls)는 디지털 스토리텔링 영역에 오랜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스토리텔링은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한 스토리 구성 방법론이다(서성은, 2012). 복잡다단하게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내외의 사안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춰 전달하는 이야기 전달 양식이다. 기존 뉴스 형식은 정보성과 전문성에 집착한나머지 쉬운 이해를 간과했고, 자연스럽게 뉴스로부터 독자의 이탈을 불러왔다. 내러티브 방식의 텍스트 뉴스가 반성적 맥락에서 주목을 받은 것도 실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연결돼있었다.

스토리텔링은 소설, 다큐, 게임 등에서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구성 기법이지만, 뉴스에선 다소 어색하게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을 전후에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과감한 실험적 시도가 이어졌고, 이제는 보편의 단계로 서서히 진입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특히 롱폼 저널리즘은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입체면을 만나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형식으로 재탄성되고 있는 흐름이다.

우측의 스크롤바가 보여주는 사용자의 현재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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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스토리텔링은 기존의 영상이나 텍스트 중심의 스토리 구성 방식에 디지털적 요소가 결합될 때, 제 몫을 발휘한다. 디지털 접면의 고유성은 웹 환경의 특성으로 이해되곤 하는데, 하이퍼텍스트, 멀티미디어 상호작용, 개인화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디지털이라는 캔버스가 지닌 고유의 특성, 그리고 독자들이 만나는 디지털 접면의 이 같은 특성을 수용하지 않으면, 내용만큼의 효과를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만큼 UX/UI라는 영역이 스토리 구성에 깊숙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워싱턴포스트의 ‘새로운 장벽의 시대’가 주목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니먼스토리보드는 “스크롤의 통제를 독자들에게 넘겨줬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이전까지는 사용자의 읽기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스토리가 설계된 경우가 빈번했다. 영상을 보다가 다음 요소로 넘어가기 위해 불편한 과정을 겪어야 했고, 긴 스토리 가운데 현재의 콘텐츠가 위치한 지점을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이번 스토리에서 스크롤에 대한 제어권을 폭넓게 허용함으로써, 독자들의 자유도와 선택권을 높여주고 있다.

‘새로운 장벽의 시대’ 화면 우측(PC 화면 기준)에는 스크롤 바가 배치돼있다. 이 스크롤 바만으로 전체 스토리가 몇 단계의 세부 콘텐츠 요소로 구성됐는지 한눈에 판단할 수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세부 콘텐츠가 전개될 것인지도 확인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이전 콘텐츠로 되돌려보는 네비게이션 바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세부 콘텐츠가 맥락 속에서 분절돼있으면서 동시에 맥락 속에서 서로 연결돼있기에 단절과 같은 연결이 부자연스럽지 않다. 이야기의 선형적 구성이라는 전통은 ‘새로운 장벽의 시대’에서는 일부 파괴됐다는 인상까지 받게 된다. ‘에피소드2’부터 글을 읽기 시작해도 별로 어색하지 않다. 실제로 ‘새로운 장벽의 시대’는 도입 시작에서부터 에피소드 1, 2, 3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마치 게임에서 1 스테이지를 완결짓지 않고 곧바로 2 스테이지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한 것처럼

여태까지의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은 대체로 이야기의 실감성(immersive)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투입됐다. 화려한 영상과 인터렉티브 콘텐츠 요소들이 서로 이질적으로 접착돼있어 콘텐츠 열독의 몰입감이 떨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국내에서 시도된 많은 실감형 스토리들이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새로운 장벽의 시대’는 ‘와우 효과’를 넘어서 롱폼이 나아가야 할 플롯의 구성 방식에 새로운 이정표를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요소는 사운드다. 고요한 수풀 속에서 청아하게 재잘대는 종달새의 목소리를 배경 음원으로 사용함으로써, 스토리 몰입감을 배가 시킨다. 때론 긴박함을 알리는 묵직하고 템포 빠른 음악을 스토리 뒤에 배치함으로써, 사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왜 디지털 스토리텔링에서 오디오의 요소가 중요한가를 ‘새로운 장벽의 시대’가 증명해보이고 있다.

전체적인 영상 톤을 흑백으로 구성한 점도 눈길을 끈다. 일반적으로 흑백은 컬러에 비해 인물의 표정 묘사와 설명, 주제에 집중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컬러의 다채로움 속에 담긴 복잡성을 축소해버리면서 차분함과 진중함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국제적 난민 문제가 지닌 사안의 중대성을 블랙-화이트라는 색상의 대비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니먼스토리보드는 “흑백이 다큐멘터리 느낌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회고적 코드를 자극하는 효과도 만들어냈다”고 설명했다.

롱폼 스토리와 다큐멘터리의 경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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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롱폼 스토리는 디지털의 고유성과 결합하면서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법을 탄생시키고 있다. 롱폼의 서사가 영상과 텍스트, 인터렉티브로 재구성되면서, 혁신의 중심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실감적 스토리텔링(immersive storytelling) 실험이 롱폼 저널리즘을 대상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앞서서도 언급했듯이, 디지털 공간 속에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 그 자체의 목표(쉬운 이해와 몰입)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자경험을 고려해야 한다. 스토리를 읽는 과정 그리고 스토리를 읽고 난 뒤의 경험을 고려하면서 스토리의 사용자인터페이스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장벽의 시대’는 이야기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사운드의 효과를 십분 활용했을 뿐 아니라 읽기의 제어권을 독자들에게 넘겨주는 선택을 감행했다. 이야기의 앞뒤를 넘나들어도 맥락이 깨지지 않은 블록 구조로 설계함으로써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혁신도 모색했다.

이제 신문사에서 시작된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진화는 다큐멘터리 영역과의 융합을 꾀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라는 영상의 고유 영역을 신문사가 침범함으로써 또다른 진화를 탄생시킬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롱폼의 전통 위에서 다큐멘터리형 디지털 스토리로 진화하고 있는 이 같은 실험에 저널리즘 진영 전체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경계는 허물어졌고, 전형은 파괴되고 있다. 새로운 전형의 탄생까지 어쩌면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참고 문헌

  • 박은정. (2013). 감성기반 웹사이트의 유형별 디지털 스토리텔링 플랫폼 개발. 디지털디자인학연구, 13(2), 387-397.
  • 서성은. (2012). 디지털 게임 스토리텔링과 사용자 경험 연구. 인문콘텐츠, (27), 129-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