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릿(Grit)의 힘

4층 사람들 03. 희철리즘 윤희철

이미진 · 2016년 11월 03일

<4층 사람들>은 저희 Mediati 사무실에 서식하며, 이곳에서 먹고 졸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저희 사무실이 4층에 있어 '4층 사람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인터뷰 콘셉트 및 주제는 그때 그때 필자 마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밝힙니다.


굳이 클릭하지 않아도 무슨 얘기를 할 지 짐작이 가지만 캐릭터가 좋아서 보게 되는 채널이 있고, ‘여기서는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룰까?’ 정말 궁금해서 보게 되는 채널이 있다. Heechulism은 후자에 가깝다.

Heechulism이 다루는 주제나 그 주제에 대한 의견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어도, 결론까지 가는 과정에서 ‘디테일’이 살아있다. 그 ‘디테일’을 보는 맛에 자꾸 기다리게 되고, 기대하게 된다. 좋은 인터뷰이를 만난 덕분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이의 고유한 매력을 짧은 시간 안에 끌어내고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은 분명 연출자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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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사람들>의 세번째 주인공은 Heechulism의 윤희철 씨다.

Heechulism은 작년 6월에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다. 시작한 지 1년 3개월 남짓 되었지만 어느새 구독자 수가 8만 7천명을 넘어섰다. 채널에는 Reaction / Thoughts, Emotions, and The Life / Interview People / TRY 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가 있다. 조회수 100만을 거뜬히 넘는 영상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데, 모든 영상의 기획과 촬영, 편집을 희철씨 혼자 해낸다.

희철씨는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그가 늘 갖고 다니는 수첩만 봐도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메디아티 사무실에서 두 달간 그를 몰래 관찰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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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무조건 해요."

Q. '희철리즘'은 주로 어떤 콘텐츠를 만드나요?
A. 우리 사회 전반에 ‘다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으로, 그런 주제들을 다루려고 해요. 예를 들면 얼마 전에 나온 ‘문신한 사람들’ 콘텐츠의 경우도 그런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문신하면 남자는 '깡패', '건달' 여자는 '걸레'라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그건 정말 '다름'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무지해서도 아니고, 이해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나빠서도 아니고.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은데, 그 이해를 도와주면 어떨까.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콘텐츠를 만들면 어떨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Q. 처음 시작은 어땠어요? 촬영, 편집은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해요.
A. 처음 했을 때 영상은 영화감독 준비하는 제 친구가 공짜로 찍어줬어요. 근데 편집도 할 줄 모르잖아요. 그래서 대학교 친구 데리고 와서 “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잘라줘. 붙여줘. 음악은 어디야.” 이렇게 하면서 만들었어요. 근데 배우니까 또 금방 배우더라고요. 3시간 만에 배운 것 같아요. 유튜브에서 공부했는데 'How to Use 프리미어' 이런 것들 보면서 배웠어요. 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길은 늘 있더라고요. 지금도 훌륭한 기술 같은 건 없어요. 운이 좋았죠, 사실.

Q. 주제 선정하거나 인터뷰할 때 특별히 신경쓰는 부분이 있나요?
A. 저는 제 영상으로 인해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면, 무조건 해요. 왜냐하면 모든 큰 일은 작은 일로부터 시작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변화에 있어 'starting point'만 만들어 낼 수 있어도 저는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해요. 다만 정치나 종교 얘기는 조심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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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chulism 영상은 대부분 5분이 넘고, 길게는 13분까지 간다. 하지만 영상을 중간에 끄고 '너무 길다'고 느꼈던 경험은 별로 없다. 희철씨에게 이 얘기를 하자 그 역시 사람들로부터 '영상 길이가 10분이나 되는지 몰랐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고 했다.

Q. 희철님 영상은 길어도 이탈을 안하게 되더라고요.
A. 저는 외국 사람은 물론 한국 사람하고 인터뷰한 것도 종이에 다 하나하나 적어요. 7장에서 8장 정도 되는 종이를 책상에 다 펼쳐놓은 채로 구성을 하거든요. 어떤 흐름이 자연스럽고 어떻게 해야 끊기지 않는지. 종이들을 보며 콘셉트를 정해요. 대치로 갈 것인가, 어떻게 갈 것인가. 영상에 붙여 넣으면 그 부분은 종이에서 지우고. 그 다음은 어디로 갈까? 퍼즐 맞추듯이 생각해 보고. 이런 과정을 세심하게 거친 게 스토리텔링에 도움을 준 것 같아요. 여담이지만 그거 하면서 영어도 엄청 늘었어요. (웃음)


마냥 신나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너가 뭔데 우리를 다루냐'는 항의를 받기도 하고, 수없는 비난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메시지에 공감하는 독자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담긴 진정성 있는 '비판'을 만났을 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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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콘텐츠 만드는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있어요?
A. 얼마 전에 ALT에서도 말한 건데요. 'Black People in Korea' 에피소드를 만들 때였어요. 제가 흑인에 대해서 아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국내 흑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요. 근데 그 커뮤니티 사람들이 저한테 뭐라고 하더라고요. ‘딱 보니까 영어도 잘 못하고 흑인에 대한 이해도 없는 것 같은데, 너가 뭔데 우리를 다루냐’ 그래서 제가 정말 조심해서 잘 다루겠다고 말하면서 겨우 몇 명을 모았어요. 근데 실제로 영상이 발행되고 나서, 그때 그 커뮤니티에서 제게 욕했던 사람들 100%가 저한테 개인 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잘 봤다고, 고맙다고. 그때 했던 말은 취소라고.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또 많은 사람들이 흑인에 대해 편견이 없어졌다고 말해줬는데, 제가 누군가의 인식에 변화를 준 거잖아요. 그것도 긍정적인 변화를요. 그 때 ‘와! 나 정말 멋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경험이 있어요. 정말 감사했던 '비판'이었는데요. 제가 무슬림에 대한 영상을 내보냈을 때 어떤 분이 <희철님 읽어주세요> 라며 엄청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더라고요. '콘텐츠 내에서 무슬림이 다 나쁜 사람이 아니고 무슬림에 대해 우리가 가진 생각들은 편견이고, 이런 식으로만 다뤄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이란이나 이스라엘에서 유린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인권 문제는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냐. 그들은 이렇게 세상에 나와서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런 내용이었어요. 제 취지는 '모든 무슬림들이 IS는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들을 배척할 필요 없다.'라는 것이었지만 ‘히잡은 내가 좋아서 쓰는 거야. 우린 여성 차별 하는 데 아니야’ 라고 말하는 인터뷰이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정말 여성 차별과 유린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 지적을 받고 나서 '아, 내가 고민이 부족했구나. 만약에 우리 팀에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을 미리 짚고 넘어가지 않았을까? 더 균형있게 다루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그때는 제가 사과문도 올렸어요. 그런 비판은 정말 저에게 너무 너무 좋은 것들이죠. 그런 차원에서 팀원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자주 해요.


Q. 어머님도 팬이세요?
A. 네. 엄청 좋아하세요. 아침마다 봐요. 단 하루도 안 빠지고. 그래서 제일 먼저 알려주시죠. ‘너 조회수 10만 넘었다!’ 하고요. (웃음) 오늘 아침에도 그랬어요. 제가 ‘어, 10만 넘었다!’ 하니까 엄마가 ‘이제 알았어? 너 어제 밤에 넘었어~’ 하시더라고요. 옛날부터 엄마가 정말 많이 믿어주셨던 것 같아요. 제가 중학생 때 사고를 정말 많이 쳤거든요. 학교에 볼링부가 있었는데, 볼링부 애들보다 우리 엄마가 학교에 더 자주 온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엄마가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죠. 근데 그때도 엄마가 항상 넌 잘 할 거라고, 이거 잠깐 지나가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셨어요. 지금도 제가 무슨 일을 하든 정말 좋아해 주세요.

Q. 모든 걸 혼자서 하고 있는데, 한계를 느낄 때는 없나요?
A. 한계라고 얘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어떤 게 더 충족되었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신다면 당연히 '팀원'이죠. 특히 저와 관점이 다른 사람과 팀으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자주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탈북자 관련된 영상을 만들었는데, 편집을 하다 보니까 영상에 제 평소 가치관이 너무 드러나더라고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과 팀을 이룰 수 있다면 이런 것들을 더 균형있게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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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어떤 사람,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어요?
A. 균형있는 사람. 그리고 아집이 없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나와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 그게 제가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하고요. 저는 아직 그게 잘 안 되거든요. 사람들은 제가 소수자 문제나 차별에 대해서도 많이 다루니까 저는 전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 역시도 그런 차별에서 자유롭지만은 않아요. 그래서 직접 콘텐츠를 만들면서 제 스스로를 바꿔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실제로 이 일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요. 지금도 제가 그렇게 균형있는 사람은 못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좀 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제 목표 중에 하나에요.

"어떻게 보면 메디아티에서 저를 선택해 준 거잖아요. 그 선택이 옳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정말 잘 하고 싶어요. 제게 기회를 주신 것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열심히, 그리고 잘해서 메디아티에서 가장 성공한 미디어 스타트업이 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웃음) 인생에서 큰 기회가 세 번 온다고 하잖아요. 저는 지금 이 기회를 그 세 번의 기회 중 첫 번째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좋아하는 일에 에너지를 집중시킬 줄 알고, 한 번 시작한 일은 좀처럼 포기하지 않으며 끈질기게 붙잡고 있는 태도. 'Grit(열정의 진득함, 끝까지 해내는 것)'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게 아닐까, 그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