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기재와 인재의 발굴

학력과 학교를 아는 것은 좋은 인재를 발굴하는데 도움이 될까?

박상현 · 2016년 10월 22일

경험 많은 의사의 손끝

남성의 전립선 검사를 왜 아직도 의사가 손가락을 넣어서 (너무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자) 하느냐는 내 질문에 의사 친구가, "경험 많은 의사의 손끝 감각 보다 나은 촬영장비는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사람을 파악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보면 조금만 깊이 들어가서 (no pun intended) 얘기해봐도 어떤 사람인지 파악이 된다. 그 사람이 해왔던 일이 무엇인지 확인한 후에 시간을 길게 잡고 이야기(혹은 인터뷰)를 해보면 말 그대로 "다 나온다."

그런데 인터뷰어와 인터뷰이의 연령대가 서로 많이 다르면 좀 더 시간이 걸린다. 세대가 다르면 바디랭귀지와 대화법이 달라져서 미세한 신호를 놓치거나 (아주 젊은 경우) 아직 충분히 발현되지 않은 잠재력을 측정해야 하기 때문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잠재력이라는 건 쉽게 드러나는 게 아니다. 게다가 그 잠재력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느냐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서, 대개 가정교육을 비롯해 그가 자라면서 형성된 습관이 잠재력의 발현 여부를 결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쉽게 좌절하거나 자존감이 낮은 경우, 일습관이 나쁘게 밴 경우는 많은 걸 바꿔줘야 비로소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

젊은 나이에 입대한 미군 사병들을 보면 미국의 군대가 그런 역할을 해주는 기관이 되었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태어나서 17, 18년 동안 온갖 나쁜 버릇이 몸에 밴 젊은이들을 boot camp에서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놓는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미군에 입대한 모든 젊은이들이 훌륭한 인재로 거듭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잠재력이 있는 사람들은 약간의 structure만 부여해줘도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카투사로 군복무하던 시절에 만났던 미군 하사관급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신입사원 선발과 조작적 정의

하지만 직장은 가정도, 군대도 아니다. 회사가 그걸 대신해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잠재력이 안 보여도 자존감과 일습관이 잘 잡힌 젊은이에게 베팅을 하는 거다.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자존감과 일습관을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직장에서 "좋은 학교 나온" 인재를 찾는다. 좋은 학교 나왔다는 자신감을 자존감이라고 조작적 정의를 하고 (그 둘은 엄연히 다르다), 학생시절에 시키면 닥치고 앉아 높은 점수를 뽑아낸 사람은 일습관이 나쁘지는 않다고 조작적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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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인재에 대한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는 말하자면 시약이나 촬영장비로 얻어낸 근사치일 뿐이다. 정확한 진단은 의사가 직접 보거나 만져봐야 가능하듯, 진짜 잠재력 있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목표를 향해 일하는 습관이 잘 배어있는 젊은이들은 출신학교 따위의 수치 만으로는 알 수 없다.

2016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

게다가 의사도 실수를 하듯, 온전히 능력과 잠재력만 보기로 작정한 인터뷰어도 지원자의 학력이나 소속 때문에 판단이 흔들릴 수 있다. 그런 수치에 의존하기로 작정한 대기업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메디아티와 서강대가 주관하고 구글코리아가 주최하는 구글 뉴스랩 펠로우십(Google News Lab Fellowship)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년에 이어 구글 뉴스랩에서는 학력 기재는 물론 지원자가 이메일 주소 등의 방법으로 학교를 슬쩍 밝히는 일을 금지할 뿐 아니라, 위반하면 감점처리를 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시키는대로 앉아서 요구받은 결과물을 뽑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문제점은 물론 해결방법까지 가져오는 사람이다. 이런 인재는 "좋은 학력을 갖췄다"는 조작적 정의를 통해 발견해낼 수 없다.

"그래도 그렇지, 감점처리는 너무 하지 않나?"

그렇지 않다. 선발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그것도 학력, 학벌주의에서 자란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학력을 가진 사람의 작품은 좀 더 좋아보이는, 후보자에게 유리한 선입견이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감점처리는 선발자가 그렇게 부당하게 주었을 수 있는 만큼의 점수를 깎는 방법이다.

우리는 더 이상 과거처럼 인력을 쏟아부어서 경제성장을 이루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재는 학력과 출신학교라는 '능력의 조작적 정의'를 통해서 뽑을 수 없으며, 과거처럼 그렇게 뽑은 인력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가며 'OO의 인재'로 만들어가는 세상도 끝났다.

다행인 것은 이미 우리 주위에는 자발적으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젊은 인재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며, 그들은 대기업이 "뽑아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의 구태를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런 보석을 찾아내는 작업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