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기고 있는 것들

4층 사람들 09. 에이프릴 매거진 이유진

이선재 · 2018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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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에서 MBA 들어갈 때 세웠던 목표가 딱 세 개였어요. 연애는 안 한다. 졸업하자마자 스위스를 떠난다. 누가 뭐라고 꼬드겨도 사업은 안 한다. (웃음) 어쩌다보니 다 틀어졌네요."

유년기는 법조인을 꿈꾸며 보냈고, 실제로 법대에 진학해 연수원을 거쳐 변호사가 되었다. 그때만 해도 평생 법조인으로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변호사 4년차에 커리어를 바꿔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변호사로 일하는 것은 종종 '그림의 반'만 보는 기분이었다. 더 늦기 전에 커리어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곧 결심이 됐다. 전혀 다른 그룹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돌연 스위스 행을 택했다. 로잔호텔학교 MBA 과정을 이수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에 가자 여성 앞에 아시아가 붙었다. 아시아 여성으로 유럽 생활을 하며 인종적으로 'Minority'를 처음 경험했다.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지만, 아시아 여성들의 구심점이 될 만한 공통의 커뮤니티나 미디어는 찾기 힘들었다. 구글에 아시아 여성을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뜨는 결과화면에는, 아시아 여성이 말하는 아시아 여성의 이야기 대신 온통 대상화된 아시아 여성의 모습만 가득했다.

그때 생각했다.
"이거 진짜 이상한데?"


안녕하세요, 유진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에이프릴 매거진을 만든 이유진입니다. 제가 그래도 나름 미디어 업계 뉴페이스죠. (웃음) 원래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직업적으로는 변호사를 했고요. 10살 때부터 법조인이 되는 게 꿈이었던 사람이었어요. 평생 법조인을 할 줄 알았는데, 4년차 때 돌연 커리어를 바꾸기 위해 스위스 로잔으로 유학을 갔고요. 거기에서는 호스피탈리티 쪽 MBA를 수료했어요. 법조계와는 전혀 다른 분야기도 하고, 사람들을 happy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생각에서였죠. 스위스에서 굉장히 풍성한 1년을 보내고 커리어를 고민하던 차에, 당시 제가 집중하던 문제가 아시아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 문화적 이슈들이었던 지라, 미디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아시아 여성들 사이에 구심점이 될 만한 공통의 커뮤니티, 미디어, 무엇이라도 만들고 싶었어요. '단 한 줄을 남겨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겠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이렇게 본격적인 미디어의 모양새를 갖춘지는 채 몇 달이 되지 않았네요.

처음 이런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신 후에는 어떤 과정을 거치셨나요?

처음 출발점은 단순하게 '내 주변에 멋진 여자들을 소개하자' 였어요. 스위스 로잔에 로잔공과대학이 있거든요. 거기에 중국 여성 과학자 한 분이 계셨는데, 정말 멋진 분이었어요. 인터뷰를 하면 나도 그 분에게 배울 수 있고, 콘텐츠로 만들면 그 분의 이야기를 더 널리 소개할 수 있으니까, 인터뷰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거죠.

근데 하다 보니까 이걸 널리 알리기에는 내 역량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어떡하지? 어떻게 하면 이걸 더 잘, 효과적으로 할 수 있지? 고민하다가 '그러면 나보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는 사람들과 함께 하자'까지 생각이 닿았어요. 그때부터 아시아 여성 블로거들의 글을 찾게 됐어요. 슬로베니아에 살고 있는 중국계 캐내디언인데 블로그를 하는 분. 근데 블로그에 담긴 이 분의 voice가 되게 특별한 거예요. 이런 분들을 소개하면 좋겠다. 그때부터 롤모델이 될 만한 아시안 여성 인터뷰 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관점과 보이스를 가진 아시아 여성 블로거의 기사도 싣게 됐죠.

그 이후로도 '더 의미 있는 기획이 뭐가 있을까' 꾸준히 욕심을 냈어요. 아시아 여성 리뷰어에게 아시아 여성 작가들의 책만 골라서 북리뷰를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 근데 한 번만 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 제일 유명한 아시아 여성 작가가 한강이었고, 대표작이 <채식주의자>였거든요. 그래서 한 두 번만 해서는 그런 유명한 작가의 대표작만 다루게 되거나, 우리가 만들어내는 의미가 지속가능할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면 연재물로 가서 한 달에 책 한 권씩 소개를 하고 맥을 이어 나가자, 그게 저희 에이프릴 매거진의 첫 연재 기사가 되었죠.

그렇게 아이템이 하나씩 하나씩 더해지면서, 매거진 형태를 갖춰가고 그런 식으로 작게 실험한게 쌓여서 1년이 됐어요.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결혼식을 두 번을 하고(한 사람하고), 스위스에서 서울로 네 번을 거쳐 이사오고, 그걸 다 거쳐서 1년이 걸려서 지금의 이 형태가 되었죠.

내가 일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즐거웠던 적이 없으니까, 이게 나한테 맞는 일인가보다. 그럼 될 때까지 계속 해봐야겠다. 해서 좀더 진지하게 접근하기 시작했죠. 비즈니스 면으로 경험이 많은 스타트업 분들도 쫓아다녀보고, 투자도 알아보고. 전에는 생각을 안하던 것들을 막 생각하기 시작한거죠. 그러다 메디아티도 만난 거고요.

MBA들어갈 때 제 목표가 딱 세 개였어요. 앞날은 모르지만 세 개는 확실하다. 누가 뭐래도 연애를 안 한다. 졸업하자마자 스위스를 떠난다. 누가 뭐라고 꼬드겨도 내 사업은 안한다. (웃음) 어쩌다 보니 다 틀어졌네요. 아이고, 이럴 줄 알았나. 옛날에는 제가 평생 변호사로 살 줄 알았죠. 근데 5년 전부터는 당장 내일 일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에이프릴 매거진의 제일 큰 자산이 작가 네트워크잖아요. 어떤 분들이 에이프릴 매거진 작가로 오시나요? 자랑 좀 해주세요.

저는 종교는 없는데요. 일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고객부터 독자, 작가든 누구든 다 인연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누구든 일을 하게 되면 다 소중해져요, 사랑스럽고. 나하고 같이 일을 하는 게 이 사람에게 유익한 경험이 됐으면 좋겠고요. 그러다 보니, 같이 크고 싶은 사람들을 작가로 고르는 것 같아요. 학생이든 블로거든, 프리랜스 작가든 내 취지에 공감할 수 있고 우리 브랜드에 도움이 되는가도 고려해야 겠지만, 지금 글이나 경력을 봤을 때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눈여겨 보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같이 일을 하면서 작가들이 제가 준 피드백을 빠르게 흡수하고, 성장하고, 여기서 글을 쓰는 걸 자기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나 좋은 경험으로 끌고 가고. 그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무척 뿌듯해요. "우리가 지금 같이 성장하고 있구나" 싶어서요.

최근에는 특히 대학생이나 막 대학을 졸업한 분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어요. 그러면 또 남달라요. 학계 생활 오래 한 분, 블로거 오래 한 분, 학생, 개개인마다 다르기도 하지만 이 분들이 거쳐온 환경에 따라 패턴이 있는 거예요. 제 목표는 '이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자신있게 내고, 그걸 세상 어디에다 내놔도 스스로를 잘 방어할 수 있게 도와주자' 인데 분야별로 도와줄 구석들이 다르다고 하면 이해 되시려나요.

여튼, 그래서 같이 일하는 작가들 자랑을 하자면, 진짜로 성장을 한다는 거. 그럼 좋겠다고 가졌던 바람이 인간적으로나, 글에서나, 시선에서나 모두 실제로 성장하는 게 보여요. 우리 브랜드가 자랄 때 이 네트워크가 같이 자라는 거예요.

만일 에이프릴에서 열심히 하다가 같은 테마를 갖고 어느 날부터 다른 잘 나가는 매거진으로 옮겨 간다? 축하 파티 해줘야죠. 그게 저희의 목표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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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Magazine의 예원님과 유진님 (우측 사진 기준/사진 촬영: 루카)


에이프릴 매거진의 목표 중 우리 사회의 좋은 여성 멘토들을 보여주는 작업도 있잖아요. 유진님은 살아오며 그런 여성 멘토나 선배, 롤모델이 있었나요?

개인적으로 직업윤리를 생각할 때 늘 떠오르는 분이 계세요. 제가 로펌에서 일할 때 건물 같은 층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어요. 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에 맞춰 청소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그 분께 제가 정말 많이 배웠어요.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면, 그날이 휴일 전날이었어요. 곧 태풍이 온다는 예보가 뜬 날이었을 거예요. 밖에는 우울하게 바람이 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지려고 하는데, 그 아주머니께서 일하실 시간이 아닌데 저녁에 오셔서 청소를 시작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 아주머니 왜 오셨어요?" 했더니, 당신이 그 다음날 쉬는 날인데, 태풍 오고 나면 쓰레기부터 물난리에, 다음날 일하는 변호사들한테 지장 된다고 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치워놓으려고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순간 제가 여러겹으로 깨달았어요. 아, 이 정도의 책임감을 갖고 내가 일한 적 있던가. 또 하나는 우리 회사만이 아니고 그 건물에서 아주머니를 배려를 잘 못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정도 애정을 갖고 계셨던 모습. 매일 그 아주머니를 볼 때마다 했던 생각이 이 로펌에서 변호사 한 명 빠져도 아무 지장이 없지만, 이 아주머니 한 분 안 계시면 모든게 올스탑이겠구나. 저는 직업윤리의 상당 부분을 그 아주머니께 배웠어요. 누구나 하는 일은 다른데, 기술은 배우면 되는 거고. 그런데 그런 마음은, 보고 배울 수밖에 없거든요. 마음. 사실 멘토의 역할이 그런 거잖아요. 내가 혼란스러울 때 마음의 갈 길이 어딘지 알려주는 사람. 제게는 그 분이 멘토라면 멘토인 셈이죠.

그리고요? 살아오며 꾸준히 힘이 되었던 분도 있었나요? 아님 그런 존재가 없었기 때문에 이걸 강하게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제가 이걸 하는 이유는, 단순해요. 세계 곳곳에 있는 여자 애들한테 네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네 삶이 더 나아질 수 있고, 방법을 모르겠다면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제안하고 도와주고 싶어서.

제가 어렸을 때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못 보고 그런 말들을 못 들었거든요. 어리고 방황하던 시기에 누군가 친절하게 '지금은 힘들고 세상이 어두워 보여도, 괜찮다. 네 삶은 더 나아질 수 있고 이렇게 하면 된단다.' 그림을 보여주었다면. 그런 선배들이 많았다면 힘든 게 많이 줄어들지 않았을까? 자주 생각 했거든요.

우리나라도 많이 힘들고 팍팍하지만, 저는 이 단계까지도 아직 오지 못한 동남아시아의 다른 곳들을 주로 바라보고 있어요. 필리핀의 어느 섬에서 이제 막 영어를 익혀서 책을 보는 여자아이일 수도, 제가 모르는 어느 지역에 있는 여자아이일 수도 있어요. 그런 한 사람 한 사람한테 네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세상 어딘가에 널 도와줄 사람이 한 명쯤은 반드시 있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온라인으로 미디어를 하는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 친구들에게 가장 쉽게 닿을 수 있으니까요. 책이나 오프라인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었겠죠.


우리가 남기고 있는 것들

제가 작가들에게 많이 하는 얘기가 있어요. 온라인에서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가 뭘까. 모니터만 덮으면 사라지는데, 보이지 않는데. 우리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뭘 남기고 있는 걸까?

그런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해요.

온라인에 글을 쓴다는 건 편지를 써서 병에 담아서 바다에 흘려보내는 것과 같다. 이 글이 언제, 누구에게 닿을지 알 수 없기에. 그러니까 우리,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쓰고,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두고 조심해서 쓰자. 비즈니스는 흥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고, 사람들은 올 수도 있고 갈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작업을 통해 남길 수 있는 건 글이다. 그건 어디 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