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Rule ② 제품 = 스토리

품질이 무의미한 세상에서 소비자가 사는 것은 물건이 아니다

박상현 · 2018년 01월 08일

자동차와 아웃도어 브랜드

미국의 포드 자동차는 1990년대 초, 자사의 주력 SUV인 익스플로러(Explorer)의 최고급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면서 당시 가장 인기있던 아웃도어 브랜드인 에디 바우어(Eddie Bauer)와 협업했다. 중산층이 즐겨 타는 SUV의 이미지를 좀 더 고급화하기에 적절한 브랜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아웃도어 브랜드 역시 많이 보급되고, 흔해지면 신선함이 떨어지고 가치가 하락하게 된다. 에디 바우어의 제품들이 아울렛에 등장하고 일상적인 풍경이 되면서 에디 바우어 브랜드의 프리미엄은 사실상 사라지게 되었고, 포드와의 협업도 종료되었다.

2000년대 초에는 4륜 구동의 크로스오버 모델을 주력으로 하는 일본의 스바루 자동차가 아웃도어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한 리미티드 에디션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포드의 시도를 흉내낸 것이었지만, 협업 파트너로 선택한 아웃도어 브랜드는 에디 바우어 보다는 덜 대중화된 L.L. Bean이었다. 미국 최북단의 메인(Maine) 주에 본사를 가진 기업인 L.L. Bean은 눈이 많이 내리는 거친 환경과 랍스터 낚시 등 메인 주의 이미지를 잘 살려서 브랜드를 차별화한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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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에 강한 것으로 유명한 스바루는 "메인 주를 대표하는 비공식 자동차"라는 별명을 가졌기 때문에 메인을 대표하는 L.L. Bean 브랜드와의 협업은 거의 운명적이라고 까지 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 초라한 판매 실적으로 미국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던 스바루의 화려한 부활은 "메인 주-L.L. Bean-눈길에 강한 스바루"라는 스토리텔링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만큼 완벽한 브랜딩이었다.

아웃도어 스토리텔러, 파타고니아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의 아웃도어 시장에서는 새로운 스토리텔러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에디 바우어 (1920년 설립), L.L. Bean(1912년 설립)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브랜드인 파타고니아(Patagonia, 1973년 설립)가 소비자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바로 환경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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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는 2011년 "이 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캠페인을 통해 "필요한 옷이 아니면 우리 제품을 사지 말라"는 광고를 내면서 큰 화제가 되었다. 이 광고는 탐험가이기도 했던 파타고니아의 설립자 두 명의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180° South>(2010)와 함께 파타고니아라는 회사의 이미지를 "장사보다 환경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으로 굳혀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그 결과, 현재 파타고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아웃도어 브랜드가 되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역사가 수십 년이 넘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기준은 '누가 더 진짜(authentic) 스토리를 가지고 있느냐'였다. 특정한 지역적 연관성이 없는 에디 바우어 보다는 메인이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성장한 L.L. Bean이 더 흥미로웠고, 남미의 파타고니아를 탐험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천직을 발견하고 아예 회사 이름도 파타고니아로 정한 설립자들의 이야기는 더더욱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신생 아웃도어 브랜드인 헉베리가 브랜드와 미디어의 구분을 없애버리면서 까지 스토리텔링에 힘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일본의 MUJI(無印良品)가 아예 브랜드 자체를 거부하는 "no brand" 전략을 사업 초기에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가 없다"는 '스토리'가 브랜드 자체 보다 더 호소력이 강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산품의 품질이 보편화된 시장에서 '고급 브랜드'라는 주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몰스킨 노트가 브루스 채트윈, 피카소 등의 유명인을 동원한 스토리를 제품에 입힌 것도 같은 논리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보고 구매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가 가진 스토리를 보고 결정한다. 그리고 그들이 돈을 주고 사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 뒤에 있는 스토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