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아티 '나리님'을 아시나요? (1)

4층 사람들 08. 메디아티 김나리

이미진 · 2017년 12월 07일

'4층 사람들'은 저희 Mediati 사무실에 서식하며, 이곳에서 먹고 졸고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저희 사무실이 4층에 있어 '4층 사람들'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메디아티는 지난 10월 장충동에서 혜화동으로 이사를 왔지만, 운 좋게도 사무실이 여전히 4층이네요. 덕분에 메디아티 '4층 사람들'은 쭉 이어질 예정입니다.


나리님은 스무살 무렵 한국을 떠나 베를린에 갔다. 그때부터 영화를 시작해서 지금도 영화를 하고 있으니, 나리님이 자신을 가장 정확하고 심플하게 설명할 때 쓰는 말도 당연 '영화인'이다. 그렇게 영화만 알던 나리님이 한국까지 날아와서 Mediati Video Strategist라는 직함을 갖게 되다니. 이쯤 되면 4층 사람들 인터뷰의 단골 질문을 던질만 하다.

"메디아티에는 어쩌다 오게 되셨어요?"

(나리님은 질문을 듣자마자 특유의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작년(2016)에 제가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일주일 짜리 워크샵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정수님이 한 일주일 전부터 제가 페이스북에 쓰는 게시물마다 좋아요를 누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느낌이 왔어요. 아, 정수님 나한테 연락하실건가보다. (웃음) 왜냐하면 우리가 늘 연락하고 사는 관계도 아니고. 그래서 '이번에는 되게 오랜만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일주일 후에 암스테르담 갔는데 페이스북 전화기능으로 딱 전화가 오는 거예요. 전화 받았더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두 문장을 말씀하셨는데 못 알아들었어요. 아직도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 그 문장이 아마 ‘뉴미디어’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이 세 단어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근데 세 단어 다 제가 잘 모르는 거였고, ‘나리님 와’ 이 말만 기억에 남는데 그 말을 듣고 그냥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말은 ‘네네네’ 했는데 머릿속으로는 ‘나는 시골에 처박혀서 다큐멘터리나 하는 사람인데 내가 뭘 아냐’ 했죠. 근데 정수님이 그냥 오라고 하시는데, 그 마음을 믿기로 한 거예요. 정수님 생각에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날 부르는 거겠지, 싶었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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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셔서 어땠어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일단 제가 뭘 해야 되는지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왔잖아요. 아직도 기억나요. 정수님이 미진님만 남겨놓고 미진님이 다 도와주실 거라고 하면서 둘이 알아서 잘 해보라고 하고 나가셨던 거. 그때 메디아티에는 닷페이스, 디에디트, 알트, 코리아 엑스포제 팀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죠.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제가 뉴미디어를 아는 것도 없고. 영상도 영화 하겠다는 사람들한테는 가르칠 수 있는데, 그게 아니니까. 그때 엄청 고민해서 밤을 새고 어떡하지? 뭐하지? 하다가 ‘어차피 날 여기에 부른건 내가 뉴미디어 전문가라서 부른 것도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생각했어요. 그래서 직관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고, 참고자료 준비해서 커리큘럼을 만든 거죠.

한 번 오고 다신 안 올 수도 있었을텐데, 왜 또 오셨어요?

이거 뺄 것 같은데, 전 미진님이랑 같이 일하는 게 되게 좋았어요. 미진님이랑 일하는데 희망 같은거? 아 이런 사람이랑 같이 일할 수 있다면 되게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흐흐. 이건 꼭 넣어주세요! 그리고 또 하나는, 제가 영상편집 워크숍 외에는 주로 닷페이스 팀을 멘토링 했잖아요. 근데 그 경험이 너무 좋았어요. 그게 얼마나 좋았냐면 '한국으로 돌아와서 닷페이스에 들어갈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사실 그 생각이 아직도 유효하긴 해요. 약간? 왜냐하면 지금은 메디아티가 더 좋으니까. (하하) 네, 여튼 그 경험들이 너무 좋아서 '이 사람들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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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 대해 생각하면 늘 가슴이 답답하고 한국 문화를 생각했을 때도 답답했는데, 닷페이스를 비롯해서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자기들이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눈을 봤을 때 ‘아, 한국 되게 좋은 곳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러니까 가슴이 막 뛰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고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근데 결정적으로는 다음에도 또 오라고 해서 온 거예요. (흐흐)"


저는 늘 서울에 있는 나리님의 모습만 보는데, 베를린에는 또 전혀 다른 나리님의 삶이 있잖아요. 베를린에서의 김나리와 서울에서의 김나리는 어떻게 다른가요?

서울

"우선 저는 이런 회사에 다녀본 적이 없어요. 월급 받고 출퇴근하는 회사요. 그래서 저는 서울에서 숙소를 잡아 지내면서 회사에 나오는 것 자체가 낙이면서 동시에 큰 도전이었어요. 지금은 적응해서 괜찮은데, 처음에는 회사생활 자체가 제게는 너무나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죠. 그래서 미진님께 제가 이런 질문도 드렸잖아요. ‘미진님, 회사에서 일하다가 시간 비면 대체 뭐하나요?’ 지금도 사실 ‘아, 나 회사원이잖아?’하면서 놀라기도 하고요. 맨날 저 스스로를 '프로 출근러'라고 불러요. 사실 프로가 아니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거겠죠. 통화하면서 '어, 지금 퇴근해' 할 때도 괜히 '으으' 거리면서 기분 이상해요. 신입사원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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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사무실은 크리에이티브하지 않은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답답하고, 돈을 벌기 위해 나가는 공간이고 도대체 왜 모여있는지도 모르겠고, 정해진 시간에만 일을 하고. 근데 여기에서 경험한 사무실은 함께 모여있기 때문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집단지성이라는 게 가능해지는 공간. 내가 혼자 책임지고 끙끙 앓던 불안이 여기에서는 사라진다는 걸 알게 되면서 '아, 사무실이라는 곳은 크리에이티브한 공간이구나.' 깨달았죠. 돌이켜보면 제가 creative하기 위해 찾아 다니는 수많은 공간들이 있거든요. 일이 안될 때는 카페로 뛰어가서 햇빛을 쐬고 있는다거나, 물 앞에 앉아있다거나. 별 짓을 다하잖아요. 근데 사무실에 같이 앉아있다는 게 주는 creativity도 있구나. 이걸 한 번 느끼니까 또 느끼고 싶어서 자꾸 오게 돼요.

정리하자면 한국에서의 저는 회사-집-회사-집을 반복하는 '회사원'입니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요."

베를린

"반면 베를린에서의 저는 일단 평생 월세계약을 가진 여자죠. (씨익) 거의 파기당할 걱정 없는 무기한 계약을 갖고 있어요. (씨익) 그리고 저희 집은 넓어요. 천장이 아주 높고요. 발코니에는 항상 식물이 자라고요. 고양이를 한마리 키우고 있고요. 집의 부엌도 제가 만들었어요. 가구도 하나하나 다 골라서 갖다놓은 것들이고, 다 제 손을 거친 애들이죠. 스탠드 조명 하나조차도 다 하나씩 벼룩시장에서 골라서 갖다놓은 물건이고, 작은 물건 하나에도 다 스토리가 있어요. 집에도 스토리가 있고 동네에도 스토리가 있고. 동네 근처 공원 가는 것, 자주 가는 수퍼, 동네에서 마주치면 수다떠는 동네 사람들. 정말로 그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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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베를린에서의 저는 책임을 많이 지고 있어요. 일단 일을 할 때도 훨씬 더 큰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해요. 제 편집실이 있고, 지금은 아니지만 제가 고용해서 책임져야 하는 직원들도 있었으니까요. 결혼해서 와이프가 있는데 제가 독일에 더 오래 살았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도 책임질게 많고요. 하루 일상도 서울과는 달라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해야지, 저녁 되면 퇴근해야지는 당연히 아니고요. 프리랜서로 사니까 삶의 패턴이 철저하게 제 중심으로 돌아가요."


사람들(저 포함)이 되게 부러워하잖아요. 일년의 몇 달은 서울, 나머지 몇 달은 베를린. 이런 삶 어때요?

"하하하, 저도 제가 부러워요. 이게 가능해진 게 정말 너무 기뻐요. 사실 예전부터 바랐던 거거든요. 원래는 한국 사람들과 영화를 같이 만들어서 이걸 가능하게 만들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메디아티를 통해 그 삶을 얻게 됐네요."

메디아티에 있는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는데요. 사람 만나는 거 원래 좋아하세요? 힘들지는 않으셨어요?

"별로 안 좋아해요. 사람 많은데 가는 것도 정말 안 좋아하고, 보통 많은 시간을 어디 처박혀서 혼자 보내요. 사람 잘 안 만나고, 복잡한 곳이면 안 다녀요. 그래서 한국에 가끔씩 놀러와도 출퇴근 시간에는 아예 안 움직였어요. 지하철 앉을 자리가 있을 정도로 널널할 때만 움직였죠. 그래서 지옥철을 이번에 처음 경험해 봤어요. 이젠 익숙해졌는데 처음에는 지옥철 한 번 타고 출근하면 힘이 다 빠져서 출근했죠.

근데 일단 독일에 살았을 때도 독일 뿐만 아니라 주위 유럽 국가의 영화제나 워크샵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내 업계에서 내가 일하는 것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 사람들이 되게 좋잖아요? 그러면 그게 저한테 에너지가 돼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오히려 그렇게 특정 시기에 집약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달까요.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 여기 와서도 한 3주 정도는, 사람들 많이 만나는걸 '버텼어요.' 이제는 완전 적응됐고요. 사람들이 엄청 좋지 않았더라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다들 큰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 만남이 제게도 에너지를 줬고 회사 문화도 제가 accept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좋으니까 버틸 수 있었고, 저 나름대로 노력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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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제가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걸 되게 좋아하는 사람 같다고. 그런데 에너지를 주면서 어떻게 사냐면, 메디아티 사람들은 마치 별처럼 에너지를 받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들이니까 그 빛나는 에너지를 다시 받아서 그 힘으로 제가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오 진짜 그렇네?' 생각했죠.

일하면서 제가 힘이 빠질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니까 에너지를 많이 줬는데 빛나지 않을 때. '왜 이러지' 하면서 자꾸 남은 에너지들을 다 쏟아붓게 되면, 그때 고갈이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해봤는데, 사실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가진 것을 끌어내고 북돋아주는 게 저와 잘 맞는 일 같아요."


자르기 아까운 이야기들이 많아서, 글을 두 편으로 나눠봤습니다. 2편에는 메디아티 영상 편집 워크숍(과 영상IN힐링센터), 베를린에서 시작된 나리님과 정수님의 인연, 영화계와 미디어 스타트업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민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읽었다면, 마저 읽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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